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불교 설화 제 35, 36화



佛敎 說話 및 童話 (불교 설화 및 동화)


35   동자승과 속 내의

어느 사연이 깊은 사찰에 중앙정부에서 장, 차관일행 몇 분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 절의 주지는 장난꾸러기 동자승에게 미리 방문 시간에 맞춰 법당에서 108배를 하라고 지시 하셨습니다. 108배를 하는 동안은 심한 장난질을 멈출 수 있을 테니.
, 차관과 함께 법당 안으로 들어 선 주지스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동자승은 양말이며, 팬티며, 손수건 등을 빨아서 부처님 탁자, 촛대 등에다 걸쳐놓고는 108배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방문객들이 떠나간 뒤에 주지스님은 호되게 동자승을 나무라며 꾸짖었습니다.
다음 날도 역시 귀한 손님이 오게 되어 주지스님은 장난꾸러기 동자승에게 어제 일도 상기시키며 역시 법당에서 108배를 하라고 시키셨습니다.
귀빈과 함께 법당 문을 여는 순간 주지스님은 또다시 놀라게 되었습니다. 동자승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절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꾸짖는 주지스님에게 동자승이 하는 말입니다.
어제 스님께서 팬티, 양말들은 더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셔서......”
그러니 타인을 의식해 정도 이상으로 꾸미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건 아니겠지요


36   소가죽으로 신발을 만들면

부처님 당시에 있었던 일화입니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는 말에 익숙해 있듯이 부처님께선 일 마친 농부들을 위해 저잣거리에서 설법을 자주 하셨던 모양입니다. 달도 밝지 않은 밤길은 부처님이나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안겨 주었을 겁니다.
한 부자가 고심 끝에 부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재산을 처분해 소가죽을 사서 부처님께서 오가는 길에 깔아드릴까 합니다.”
그때 부처님께선 빙그레 미소 지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고 가는 길목에 소가죽을 깔려면 얼마나 많은 소의 희생이 있겠는가? 내 발에 맞춰 소가죽으로 신발을 지어 신으면 가는 곳마다 편안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의 전환이 행과 불행을 좌우합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므로 증오의 불길이 타오를 수 있고, 한 생각이 잦아들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함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항상 강조하는 말씀이지만 생각이 바뀌어야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마음이 열려야 세상이 환히 열리는 것입니다.

-    이향봉 스님의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중에서  (묘심사 도서)  


불교 설화 제 33, 34화



佛敎 說話 및 童話 (불교 설화 및 동화)


33   수행승과 콩나물 대가리

어느 수행승이 한 톨의 쌀알에도 신도들의 땀과 정성이 일곱 근(一米七斤)이나 담겨 있다는 정신으로 살면서 수행을 했던 모양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한 스님이 이 수행승이 머물고 있는 암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거의 사찰에 당도할 무렵,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쉬고 있는데 콩나물 대가리 하나가 물에 떠내려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스님은 그 콩나물 대가리를 건져 올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헛소문이었군. 쌀 한 톨보다 큰 콩나물 대가리를 소홀히 해서 이처럼 물에 흘려 보내다니.”
그리하여 발걸음을 되돌리려는데 수행승이 헐레벌떡 숨 가쁘게 뛰어내려오며 그 스님에게 하는 말이..... “혹시 스님께서 물에 떠내려가는 콩나물 대가리 하나를 못 보셨는지요? 콩나물을 씻다가 하나를 잃어버려서요.”



34   스님의 목은 어찌 하실래요?

이조시대 때 한 율사(律師) 스님께서 계셨습니다.
엄격히 크고 작은 계율을 철저히 지킨다는 소문 난 스님이었습니다. 하루는 법당에서 이 율사 스님이 法門을 하려는 순간 일곱 살 난 어린 소녀가 스님의 두루마기 옷고름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율사 스님은 서슴없이 가위를 가져오게 해서 그 소녀의 손길이 닿은 옷고름 부분을 싹둑 잘라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그 어린 소녀가 스님 뒤로 가서 율사 스님의 목을 껴안으며 하는 말입니다.
스님의 목은 이제 무엇으로 잘라 낼래요?”



-    이향봉 스님의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중에서  (묘심사 도서)  


불교 설화 제 31, 32화



佛敎 說話 및 童話 (불교 설화 및 동화)


31   왜 수행하는가 ?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아잔 차 스님을 찾아와서 세 가지 훌륭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수행합니까?”
어떻게 수행합니까?”
수행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유럽의 어느 종교 단체가 보낸 대표단이었는데, 아시아에 있는 저명한 스승들을 찾아 다니며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서 잠시 묵묵히 있던 스님이 세 가지 질문으로 답했습니다.
왜 밥을 먹습니까?”
어떻게 먹습니까?”
잘 먹고 나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그리고 웃었습니다.
나중에 스님은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으며 가르침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자기 내면의 지혜로, 자기 본연의 법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스님은 이 사람들이 온 아시아를 돌아 다니며 찾는 것을 그들 자신의 내면에서 찾도록 되돌린 것입니다.



32   삶을 통해 배워라

진정한 문제는 할 일이 없어 지루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늘 활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늘 있는 셈입니다.

생활 속의 작은 일을 할 때에도 자신에게 의지하면, 이를테면 식사 후에 설거지를 할 때는 정성 들여 깨끗이 씻고, 허드렛일을 할 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며 즐겁게 하고, 주전자들을 들고 갈 때는 서로 부딪쳐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걸어가면 집중이 더 잘 되고 수행이 쉬워집니다. 또 자신이 현재에 머물며 흔들림 없이 알아차리고 있는지, 아니면 번뇌 속에 빠져서 길을 잃고 있는지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 온 여러분은 대체로 조급하게 서두릅니다. 그래서 행복과 고통, 번뇌도 훨씬 극단적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바르게 수행하기만 한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오히려 나중에 깊은 지혜의 원천이 될 수가 있습니다.

-    아잔 차 스님의 오두막중에서  (묘심사 도서 3000156)  


불교 설화 제 29, 30화



佛敎 說話 및 童話 (불교 설화 및 동화)


29   그릇된 길
진리를 찾아 떠도는 수행자가 부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서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방방곡곡을 찾아 헤맸습니다. 어느 날 밤, 그가 묵으려고 들어간 집에는 부처님도 머물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모습을 몰랐던 그는 그곳에 계신 부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일어나서 부처님을 찾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바른 이해(正見) 없이 평화와 깨달음을 찾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고통과 고통을 끝내는 길에 관한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나머지 부수적인 요소들도 모두 그릇될 것입니다. 곧 이해가 그릇되면 의도가 그릇되고, 말이 그릇되고, 행위가 그릇되고, 집중과 평정의 수행이 그릇됩니다. 이 문제에서도 그대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믿을 만한 안내자가 아닙니다. 비록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고 따르겠지만……. 오호라, 이것은 어느 마을을 찾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바른 길을 모른 채 그릇된 길로 가는 사람은 그 길이 편하고 쉬우므로 마음 편하게 여행을 합니다만 그러나 원래 가고자 했던 곳에는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잃어버린 황소를 찾으려면 황소가 외양간을 떠난 지점부터 발자국을 따라가야 합니다. 중간 어디엔가 나타난 발자국을 무심하게 따라가노라면 누구네 황소의 발자국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갈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0   닭 똥을 줍는 사람
아잔 차 스님은 처음 영국을 방문했을 때 여러 불교 단체들의 초청을 받아서 순회 법회를 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법문을 마치자 기품 있어 보이는 여성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녀는 불교 아비담마 심리학 교재에 있는 89가지 의식 분류에 따라서 마음의 복잡한 사이버네틱스(인공두뇌학)를 오랫동안 공부해 왔습니다. 스님은 불교 심리학 체계의 난해한 부분을 알기 쉽게 설명함으로써 그녀가 공부를 계속하도록 도울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놓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에는 자연히 불법의 원리에 집착하게 됩니다.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이런 원리를 받아들여 삶의 본질을 찾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스님은 이 여성이 마음을 공부하는 데 전념하기보다는 지적인 관념들에 사로잡혀 있음을 간파하시고는 그녀에게 꽤 직설적으로 대답했습니다. “부인께서는 마당에 암탉을 키우면서 달걀 대신에 닭 똥만 줍고 있군요.”

-    아잔 차 스님의 오두막중에서  (묘심사 도서 3000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