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주요 상식 정리(1)
(1)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에 대하여
팔리어는 성전어인 산스크리트어에
견주어 속어, 또는 지방어라고 불리는 프라크리트의
하나로, 중기 인도 아리아어에 속하는 언어이다. 남방 불교
경전이 이 언어로 쓰여 있기에 불경연구에서 중요한 언어이다. 기본적으로 사어화된 文語로서
종교, 학문적 언어로만 기능하고 있으나 스리랑카, 미얀마, 라오스, 태국 등 남방불교 국가에서 스님들이 불교의식을 치를 때
팔리어를 다양하게 쓰고 있다. 팔리어는 고유 문자가 없기 때문에 국가와 지역마다 쓰이는 문자의 종류가
저마다 다르다. 학술연구 등을 위해서는 로마자 버전을
주로 사용한다.
팔리어는 부처님이 주로 활동하셨던 마가다 지방의 언어이거나
최소한 그에 가까운 언어였기에 팔리어 경전이 산스크리트어 경전보다 부처님의 친설(親設)에 더 가까울 것이라는 견해가 정설이다.
산스크리트어[saṃskṛtā]는 인도의 옛 언어로, 힌두교 · 불교 · 자이나교의 경전이 이 언어로 되어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범어(梵語: 브라만에서 왔음)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는 베다 산스크리트어의 발전형으로, 베다 산스크리트어와 구분하여 고전 산스크리트어라고도 한다. 기원전 4세기에 파니니(Pāṇini)에
의해 고전 산스크리트어 문법이 완성되면서 베다 산스크리트어는 완전히 사어가 되었다.
mus -
mouse
sharkara
- sugar
manu
- man
(2)
불기(佛記)에 대하여 : 서기(西記) + 544년
(배경)
타이와 미얀마에 전해 온다.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는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렸다. 이 때 불교국가마다 서로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불기를 통일하기로 결의하고 1956년을 불기 2500년으로 정했다. 또한 양력 5월15일을 부처님오신날로 결정했다. 세계불교도대회에서는 석가모니의 생존시기를
타이와 미얀마에 전해 온다.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는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렸다. 이 때 불교국가마다 서로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불기를 통일하기로 결의하고 1956년을 불기 2500년으로 정했다. 또한 양력 5월15일을 부처님오신날로 결정했다. 세계불교도대회에서는 석가모니의 생존시기를
기원전 624년
∼ 기원전 544년으로 공식 채택하였다. 대한민국의 대표로는 청담, 효봉, 동산 스님이 참석하였다. 1970년 이후, 대한민국 조계종은 세계불교도대회의 공식 채택 기준인 544년 설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12년은 불기 2556년이나 부처님오신날은 세계불교도대회의
양력 5월 15일로 하지
않고, 음력 4월 8일을 채택하고 있다.
예) 서기 2012년 => 불기 2556년
(3)
육사외도(六師外道)에 대하여
부처님 성불 당시, 기원전 5, 6세기의 인도 종교 철학계는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버금갈 만큼 다양한 종교와 철학사상이 풍미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말은 뒤집어 해석한다면 그때까지 유일한
종교이며 철학으로써 인도사회를 지배해왔던 전통 브라만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새롭고 다양하며 혁신적인 종교와 철학사상이 등장했다는 뜻입니다.
이 시기 이전까지 인도사회를
지배했던 종교인 전통 브라만교에서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들의 성전인
베다(Veda)는 하늘(梵天)의 계시에 의해 씌어졌다는 베타
천계주의, 또 신(梵天)과 인간의 중간자 역할을 하는 제사장
계급인 브라만(Brahman)계급이 최고라는 브라만 중심주의, 다음으로
신에게 제사를 올림으로써 인간의 길흉화복이 좌우된다는 제사만능주의가 그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종교 사상과
전통들에 의해 아리안 족들이 원주민들을 지배하며 인도사회를 지탱해 왔지만 부처님께서 출현하셨던 기원전 5, 6세기에
접어들면 이런 전통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치 사회적 환경과 더불어 새롭고 혁신적인 종교 철학사상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 신흥 종교사상가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브라만교의 권위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자유로운 사상가들이었습니다. 새로운 철학 사조를 이루었던 이들 사상가의
출신계급 또한 기존의 제사장 계급중심에서 탈피해서 무사계급, 평민, 심지어
노예계급까지 등장해서 자유로운 사상을 펼쳤습니다.
당시의 이런 종교사상가들을
사문(沙門, Sramana)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정진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런 다양한 종교 사상가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62見이라고 분류되는
사상가들이며 이들을 더 압축해서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 하는 종교가들입니다. 즉 여섯 명의 이교도(異敎徒)라는 뜻인데 이 명칭은 불교에서
이들을 경계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들 외도의 사상을 정확히 파악하시고 그 문제점들을 일괄
해결할 수 있는 사상 및 종교 교리를 펼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외도의 사상에 대해 조금은 알아둘
필요가 있으며, 그럼으로써 불교교리를 더욱 정확히 알 수도 있겠습니다.
당시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던 육사외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푸라나 카삿파(Purana kassapa)
푸라나 카삿파의 사상은 한마디로 도덕 부정론입니다. 노예출신이기도
한 푸라나 카삿파는 부처님과도 관련이 있는데, 그가 부처님과 신통력을 겨루어서 진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의 사상은 선악(善惡)의 구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멋대로 정의한 것이며 실제로 선악(善惡)이란 없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살생이나 도둑질이나 사음 등의 악행(惡行)을 저질러도 그것이 인간들이 임의로 정의한 개념이기 때문에 실제로 악행(惡行)을 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대로 보시와 방생 같은 선행(善行)을 행한다 해도 역시 그것은 인간의 관념이 낳은 것이지 절대적인 선행(善行)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자연히 업(業)이란 없는 것이며 업(業)에 대한 응보(應報)도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를 비롯해서 정통적인 종교에서 인정한 업보(業報) 사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길흉화복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푸라나는 그것이 인과(因果)나 운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우연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선악(善惡)의 구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멋대로 정의한 것이며 실제로 선악(善惡)이란 없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살생이나 도둑질이나 사음 등의 악행(惡行)을 저질러도 그것이 인간들이 임의로 정의한 개념이기 때문에 실제로 악행(惡行)을 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대로 보시와 방생 같은 선행(善行)을 행한다 해도 역시 그것은 인간의 관념이 낳은 것이지 절대적인 선행(善行)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자연히 업(業)이란 없는 것이며 업(業)에 대한 응보(應報)도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를 비롯해서 정통적인 종교에서 인정한 업보(業報) 사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길흉화복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푸라나는 그것이 인과(因果)나 운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우연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2. 파쿠다 캇차야나(Pakudha Kaccayana)
파쿠다는 인간을 구성하는 것을 일곱 가지의 요소(要素)로 보았습니다. 즉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고락(苦樂), 생명(生命), 영혼(靈魂)의 7요소로 파악했으며. 그리고
이 일곱 가지 요소들을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즉 생명(生命)이라는 것도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에 생명은 나지도 죽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로 인식했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이란 문제를 놓고 볼 때 그는 죽이는 자도 없고, 살해되는 자도 없다는 주장을 폅니다. 즉 칼로 인간의 목을 자른다 하더라도 이것은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곱 가지 요소 사이로 칼이 지나
갈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곱 개의 요소는 상주(常住)하는 것이며, 생명도 영원히 상주하는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
숙명론(宿命論)자인
막칼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사명외도(邪命外道)의 개조(開祖)입니다.
아지비카(Ajivika)라는 교단의 교조이기도 한 막칼리는 육사외도 가운데 자이나교와 유사한 교설을 펼쳤는데 교세에 있어서도 자이나교의 니간타 나타풋타 다음가는 유력한 종교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교설은 후에 자이나교에 흡수 통합되기도 했습니다.
막칼리는 일체의 구성요소로서 12원소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12개의 원소 가운데는 영혼도 포함되는데 인간의 영혼도 하나의 원소로 파악했던 극단적인 유물론자입니다.
또 막칼리 고살라는 인간 운명에 대해서 극단적인 결정론을 주장합니다. 생사(生死) 윤회(輪廻)하는 것은 불교의 경우에는 모두 인과(因果) 업보(業報)에 의한 것으로 보지만 막칼리 고살라는 아무런 원인도 없고 또 어떤 결과도 초래하지 않는다고 하는 무인(無因) 무연(無緣)론을 펼칩니다. 인간의 의지작용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서 해탈(解脫)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8백 40만 겁을 윤회하는 동안 고(苦)가 저절로 없어져서 스스로 해탈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이처럼 막칼리는 인간이 자기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막칼리 고살라는 의지(意志)의 작용을 부정한 최초의 사상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아지비카(Ajivika)라는 교단의 교조이기도 한 막칼리는 육사외도 가운데 자이나교와 유사한 교설을 펼쳤는데 교세에 있어서도 자이나교의 니간타 나타풋타 다음가는 유력한 종교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교설은 후에 자이나교에 흡수 통합되기도 했습니다.
막칼리는 일체의 구성요소로서 12원소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12개의 원소 가운데는 영혼도 포함되는데 인간의 영혼도 하나의 원소로 파악했던 극단적인 유물론자입니다.
또 막칼리 고살라는 인간 운명에 대해서 극단적인 결정론을 주장합니다. 생사(生死) 윤회(輪廻)하는 것은 불교의 경우에는 모두 인과(因果) 업보(業報)에 의한 것으로 보지만 막칼리 고살라는 아무런 원인도 없고 또 어떤 결과도 초래하지 않는다고 하는 무인(無因) 무연(無緣)론을 펼칩니다. 인간의 의지작용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서 해탈(解脫)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8백 40만 겁을 윤회하는 동안 고(苦)가 저절로 없어져서 스스로 해탈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이처럼 막칼리는 인간이 자기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막칼리 고살라는 의지(意志)의 작용을 부정한 최초의 사상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4. 아지타 케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
아지타는 단멸(斷滅)론자이자
유물론(唯物論)자입니다. 불교와
같이 물질적 구성의 최소 단위를 지, 수, 화, 풍(地水火風)의 사대로
보았습니다. 그는 이 사대(四大)만이 참된 실재이며 독립 상주(常住)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삶은 지수화풍의 사대원소가 결합한 것이며 죽음이라는 것은 이 사대원소가 각기 자기
자리로 흩어지는 것이므로 무(無)로 돌아간다고 보았습니다. 즉 사후(死後) 세계나
영혼 같은 것은 완전히 부정했습니다. 그러므로 내세도 없고 미래세도 없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윤회(輪廻)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선악(善惡)에 대한 과보(果報)도
없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도덕은 부정되는 것이겠지요.
이 현세의 삶이 최초이자 최후이므로 인간은 그저 즐기고 살아야 한다는 쾌락주의자이자 철저한 유물론자였습니다. 이러한 철학 사조를 인도철학에서는 순세파(順世派, Carvaka)라고 합니다.
5. 산자야 벨라티풋타(Sanjaya Belatthiputta)
산자야는 인식의 객관적인 타당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편 회의론(懷疑論)자입니다.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의 대표적인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자야는 인도 철학사 가운데 최초의 회의론자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사후의 존재나 선악(善惡)의 과보(果報)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대답을 회피했는데 그의 이런 논법을 '뱀장어처럼 미끄러워 잡기 어려운 논의'라고 불렀습니다. 아무튼 이처럼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서 확정적인 지식을 주지 않으므로 그는 불가지론(不可知論)자로 불려집니다. 그래서 그는 인도 철학사상 처음으로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해 어떤 일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판단중지(epokhe)의 사상가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산자야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산자야의 문하에는 두 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는데 바로 그 유명한 부처님의 10 대제자 가운데 사리불과 목건련입니다. 이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습니다. 산자야는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그만 피를 토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두 제자는 불교 교단으로 들어와서 10대 제자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의 대표적인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자야는 인도 철학사 가운데 최초의 회의론자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사후의 존재나 선악(善惡)의 과보(果報)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대답을 회피했는데 그의 이런 논법을 '뱀장어처럼 미끄러워 잡기 어려운 논의'라고 불렀습니다. 아무튼 이처럼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서 확정적인 지식을 주지 않으므로 그는 불가지론(不可知論)자로 불려집니다. 그래서 그는 인도 철학사상 처음으로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해 어떤 일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판단중지(epokhe)의 사상가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산자야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산자야의 문하에는 두 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는데 바로 그 유명한 부처님의 10 대제자 가운데 사리불과 목건련입니다. 이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습니다. 산자야는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그만 피를 토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두 제자는 불교 교단으로 들어와서 10대 제자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6.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aputta)
자이나교의 교주입니다. 자이나교는 당시 불교와 함께 흥성했던
종교입니다. 니간타 나타풋타는 깨달음을 얻은 뒤 '위대한
영웅'이라는 뜻의 마하비라(Mahavira)로 불려졌으며
자이나교의 교주로서 자이나교를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니간타 나타풋타는 산자야의 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주의(相對主義)적 인식론(認識論)을 수립하고 여기에 입각해서 이원적(二元的) 우주론을 제시했습니다.
자이나교에서는 영혼(Jiva, 命)은 물질(Pudgala)의 업(業)에 속박되어서 현실과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고 파악합니다. 그러므로 순결한 영혼인 지바를 끈적끈적한 물질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을 고행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이나교에서는 극심한 고행이 행해졌습니다. 심지어 고행을 하다가 죽게 되면 성자로까지 추앙 받았다고 합니다.
이들의 종교생활은 불살생(不殺生), 불도(不盜), 불음(不淫)과 같은 철저한 계율을 지키는 한편 철저한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살생을 엄격히 금했기 때문에 농사마저 짓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짓다 보면 작은 곤충들을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했습니다. 실제로 이들로 인해서 인도의 상업이 발달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유명한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무소유를 철저히 실천하다 보니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고행을 하기도 했는데 이들을 나형외도(裸形外道)라고 불렀습니다. 후대에 와서는 흰옷을 입어도 된다는 백의파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 자이나교는 아직까지 인도에 신봉자들이 남아 있을 정도로 불교와 함께 크게 흥성했던 종교입니다.
이상이 육사외도 각각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불교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사상가들인데 아마 서로 교리논쟁을 하고 경쟁하면서 더욱 체계적인 사상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불교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자이나교에서는 영혼(Jiva, 命)은 물질(Pudgala)의 업(業)에 속박되어서 현실과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고 파악합니다. 그러므로 순결한 영혼인 지바를 끈적끈적한 물질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을 고행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이나교에서는 극심한 고행이 행해졌습니다. 심지어 고행을 하다가 죽게 되면 성자로까지 추앙 받았다고 합니다.
이들의 종교생활은 불살생(不殺生), 불도(不盜), 불음(不淫)과 같은 철저한 계율을 지키는 한편 철저한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살생을 엄격히 금했기 때문에 농사마저 짓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짓다 보면 작은 곤충들을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했습니다. 실제로 이들로 인해서 인도의 상업이 발달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유명한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무소유를 철저히 실천하다 보니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고행을 하기도 했는데 이들을 나형외도(裸形外道)라고 불렀습니다. 후대에 와서는 흰옷을 입어도 된다는 백의파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 자이나교는 아직까지 인도에 신봉자들이 남아 있을 정도로 불교와 함께 크게 흥성했던 종교입니다.
이상이 육사외도 각각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불교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사상가들인데 아마 서로 교리논쟁을 하고 경쟁하면서 더욱 체계적인 사상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불교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4)
무기(無記)에 대하여
무기(無記)라
함은 부처님께서 질문을 받고도 대답을 않으시거나, 관련 사항에 대해 설법을 하시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서로 모순 대립하는 문제들에 대한 선택적인 답변의 요구는 기본적으로 사견(邪見)에서 나온 것으로 義와 法에 상응하지도 않고, 범행(梵行)의 근본도
아니며, 智와 覺과 涅槃으로 나아가지도 않는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無常하다”고 가르치셨는데 ‘이 세계는 무상합니까? 영원합니까?'
하고 물으면 침묵을 하셨는데 ‘세상은 영원하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도 그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도 다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갖고 있다. 邪見은 無明과
貪慾에 가려져 나온 의미가 없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으니 그런 문제의 논의를 원칙적으로 금하신 것입니다.
(용의 비늘 색깔이 무엇인가? 혹은 토끼의
뿔 크기는 몇Cm인가 등은 애당초 말도 안 되는 것이라 봄)
《중아함경 제60권 전유경(箭喻經) 제10》에 기록되어 있는 14가지의 질문 또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 시간에 대하여
- 세간유상(世間有常) - 세간상(世間常) - 세유상(世有常) : 우주는 시간적으로 영원한가?.
- 세간무상(世間無常) - 세무상(世無常) - 세무유상(世無有常) : 우주는 시간적으로 영원하지 않은가?
- 세간유상무상(世間有常無常) - 상무상(常無常) : 우주는 시간적으로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는가?
- 세간비유상비무상(世間非有常非無常) - 비상비무상(非常非無常) : 우주는 시간적으로 영원한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않은가?
☞ 공간에 대하여
- 세간유변(世間有邊) - 유변(有邊) - 세유저(世有底) : 우주는 공간적으로 유한한가?
- 세간무변(世間無邊) - 무변(無邊) - 세무저(世無底) : 우주는 공간적으로 무한한가?
- 세간유변무변(世間有邊無邊) - 변무변(邊無邊) : 우주는 공간적으로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한가?
- 세간비유변비무변(世間非有邊非無邊) - 비변비무변(非邊非無邊) : 우주는 공간적으로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닌가?
☞ 자아에 대하여
☞ 사후세계에 대하여
- 여래사후유(如來死後有) - 여래유사후(如來有後死) - 여래종(如來終) : 여래는 육체가 죽은 후에도 존재하는가?
- 여래사후무(如來死後無) - 무후사(無後死) - 여래부종(如來不終) : 여래는 육체가 죽은 후에는 존재하지 않는가?
- 여래사후유무(如來死後有無) - 유무후사(有無後死) - 여래종부종(如來終不終) : 여래는 육체가 죽은 후에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
- 여래사후비유비무(如來死後非有非無) · 비유비무후사(非有非無後死) · 여래역비종역비부종(如來亦非終亦非不終) : 여래는 육체가 죽은 후에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5)
중도(中道)에 대하여
고타마 붓다는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깨달음을 얻어 불타로 될 때까지의 6년간 그 대부분을 가혹한 고행의
길에 정진하였다. 그러나 그 고행도
고타마 붓다에 있어서는
몸을 괴롭게 하는 것 뿐으로서 참된 인생 문제의 해결은 되지 않았다. 출가 전의 고타마 붓다는 왕자로서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여 즐거움에 찬 생활을 보내고 있었으나 그러한 물질적인 풍족함 만으로는 인간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타마 붓다는 출가
전의 쾌락(樂行)도, 출가 후의 고행도
모두 한편에 치우친 극단이라고 하며 이것을 버리고 고락 양면을 떠난 심신(心身)의 조화를 얻은 중도(中道)에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의 길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체험에 의해서 자각하였다. 성도(成道) 후 그때까지 함께 고행을
하고 있던 5인의 비구(比丘)들에게 가장 먼저 설교한 것이 중도의 이치였다.
- 개요
중도(中道)라 함은 양 극단의
중간을 의미함이 아니다. 우선 먼저 양극을 표현하는 말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크다-작다, 검다-희다 등의 것과 있다(有)-없다(無), 生-死 등등 그
중간이 되는 부근을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존재한다. 이때 후자의 상황을 중점적으로
사유한 결과 상기 중도(中道)라는 개념이 확립된 것이다. 또한 불교의 中道는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中庸)과는
전혀 다름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중도의 종류
1.
고락중도(苦樂中道) : 감각적 쾌락 추구나 육체적 고행의 양변을 떠나면 안목과 지혜를 이루고
열반으로 안내하는 길(中道)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八正道의 길이다.
2.
단상중도(斷常中道) : 사람이 죽으면 그만일까? (---> 斷見) 아니면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일까? (---> 常見) 하는 생각은 ‘자기가 지은 것을 자기가 받는다고 하면 常見에 떨어지고. 남이 지은
것을 남이 받는다고 하면 斷見에 떨어지니
이런 양극단의 생각을 떠나
소위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지는 연기(緣起)를 보라고 하신 것이다.
3.
일이중도(一異中道) : ‘육체와 영혼은 동일한가, 다른가?’의
의문에서 나온 것으로 단상중도와
근본적으로 같으나 다만 일이중도는 단견이나 상견이 수행의 이론적인
토대가 되지 못함을 지적함.
4.
유무중도(有無中道) : ‘있느냐, 없느냐?’즉 自我가
현세에만 존재하는가, 아니면 과거세, 미래세
에도 존재하는가? 하는 상주불멸 하는 自我의 유무를 논하는 것은 邪見일 뿐,
언뜻 생각에 불교는 윤회를 보고 상주불멸
하는 자아가 있다는 견해를 취할
수가 있는데 그러나 이는 常見이요, 有見이라 하심.
- 결론
일반적으로 세상사람들은 모두 상주불멸 하는 영혼과 같은 自我가 있다는 생각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거나,
그런 것은 없고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데... 사람들은 왜 자기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그런 생각에 집착하고 또한 고집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보고, 듣고, 만지고의 육근과
육경을 통해 저마다 자기 좋을 대로 취해서 각자가 달리 ‘거짓된 나’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니 이런 거짓된 나에게 이끌리지 않는 것을 正見이라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中道란 허망한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세간(世間)이 생기고
멸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여실히 보는 것이며, 이러한 世間의 실상을 밝히는 것이 바로 十二緣起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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