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 說話 및 童話 (불교 설화 및 동화)
제 20 화 팔정도 중 정견(正見)에 대한 이해
부처님께서는 정견(正見)이 없으면 어떠한 수행이라도 무의미하다. 즉 수행에 앞서 정견(正見)이
우선한다는 것을 <중아함경>의 ‘부미경’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부미여, 사견(邪見)을 가지고 선정(禪定)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사문(沙門)이
수행을 하고자 원하여 삿된 수행을 한다면 결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삿된 수행을 해서는 결코
어떤 결과도 없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삿된 방법으로 결과를 구하면 얻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부미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우유를 얻고자 하여 소의 뿔을 짠다면
결코 우유를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뿔을 짜면서 우유를 구하는 것은 바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미여, 정견(正見)을 가지고
선정을 바르게 아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수행을 하고자 하여 바른 수행을 한다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왜냐하면 바른 방법으로 결과를 구하면 얻을 길이 있기 때문이다. 부미여, 어떤 사람이 우유를 얻고자 하여 소에게 음식을 잘 먹인
후에 소의 젖을 짜면, 그는 반드시 우유를 얻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소의 젖을 짜면서 우유를 구하는 것은 바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경에서는 열반을 구하여
수행하는 것을 우유를 짜는 비유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유를 얻으려면 잘 먹인 암소의 젖을 짜야 하는
것이지, 소에서 우유가 나온다고 해서 소의 뿔을 쥐어 짠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우유를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견(正見)이
없이 수행한다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열반을 추구하는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반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 열반을 구해야 열반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열반을 구하는 팔정도(八正道)의 출발점이 멸성제(滅聖諦)를 바르게 아는 정견(正見)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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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표
지음 ‘불교란 무엇인가’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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