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 說話 및 童話 (불교 설화 및 동화)
제 22 화 보시바라밀 (布施波羅蜜)
‘육도집경’에서는 보시를 ‘無我”와 ‘空’을 실현하는 보살 수행의 출발점으로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대승불교에서
善業과 修行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선업은 천상에 가는 業이 되지만, 일체 중생을 위한 것일 경우에는 그대로 成佛을 위한 수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시가 무아의 자각에서 실천될 때는 보살의 수행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육도집경’제일경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옛날 보살이, 그 마음이 진리에 통달하여, 세간은 무상하고, 영화와 수명은 보전하기 어려움을 알고, 모든 재물을 보시하였다. 제석천(帝釋天)이 이를
보고, 그 공덕으로 자신의 지위를 빼앗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요술로써
지옥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나타나서 말했다.
“보시하여 중생을 제도하면, 죽은
후에 혼령이 태산지옥에 들어가 큰 피해를 입게 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보시를 하고 있는가?”
“자비를 베풀어 재앙을 받는다면, 보시를
받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은혜를 받는 자는 죽어서 하늘로 올라간다.”고 제석이 대답했다.
그러자 보살은 “내가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오직 중생을 위함일 뿐이다. 그대의 말과
같다면, 그것은 진실로 나의 소원이다. 자비를 베풀어 죄를
받는다 해도, 나는 반드시 보시를 행하겠다. 자기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보살의 높은 뜻이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대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고상한 일을 하는가?”하고 제석이 묻자,
“나는 부처가 되어 중생을 제도하고, 그들로
하여금 열반을 얻어 다시는 생사윤회를 하지 않게 하기를 원하다.”고 보살이 대답했다.
제석이 보살의 거룩한 생각을
듣고는 물러나 절을 하면서 말했다.
“사실은 보시를 하며 중생을 구제하였다고,
태산지옥에 들어가 화를 받는 일은 없습니다. 당신의 덕이 하늘과 땅을 울려, 나의 지위를 빼앗을까 걱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지옥을 나타내 보여
당신의 뜻을 흐리게 하려 했습니다. 어리석게도 성인을 속였으니, 그
죄가 본래 무거우나 이미 허물을 뉘우쳤나이다.” 하고는 물러났다.
이 경에서는 보시의 두 가지
유형이 대비됩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위한 보시로 제석천왕의 지위는 많은 보시를 한 공덕으로 얻은
것이며 이는 대가를 얻는 보시입니다. 이런 보시에는 항상 얻은 것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있습니다. 한편 다른 하나는 ‘無我’의 실현으로서의 보시입니다. 보살은 모든 재물을 보시하지만, 그 결과 얻게 되는 공덕을 소유하려는 생각이 없으며, 이런 보시야말로
진정한 보시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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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표
지음 ‘불교란 무엇인가’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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